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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스릴러] 가족이 남긴 저주, 피할 수 없는 운명 _ 유전 (2018) 감상후기

by Lianroom 2025.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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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포를 넘어선 심리적 지옥

 

아리 애스터 감독의 *유전(Hereditary, 2018)*은 단순한 공포 영화가 아닙니다. 이 작품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감정—상실, 죄책감, 두려움—을 정교하게 조각한 심리적 공포 그 자체입니다. 영화는 초자연적인 요소를 담고 있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가족이라는 틀 속에서 숨겨진 상처와 비밀이 점차 드러나는 과정입니다.

이야기는 주인공 애니(토니 콜렛)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시작됩니다. 겉으로는 평범한 장례식처럼 보이지만, 곧 가족을 둘러싼 기이한 사건들이 발생하며 분위기는 급격히 무거워집니다. 애니는 어머니가 생전에 비밀스러운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딸 찰리(밀리 샤피로)가 끔찍한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애니의 슬픔과 분노, 그리고 점점 광기에 가까워지는 감정선은 단순한 유령이나 악령보다 훨씬 강렬한 공포를 자아냅니다. 이 영화의 진정한 공포는 귀신이 아니라, 인간이 감당해야 하는 깊은 트라우마에서 옵니다.

 

2. 숨겨진 상징과 피할 수 없는 운명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운명’입니다. 유전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이 영화는 우리가 부모로부터 받은 것들을 피할 수 없다는 잔혹한 진실을 다룹니다.

애니의 어머니는 생전에 비밀스러운 오컬트 집단과 연관이 있었고, 그녀의 죽음 이후에도 가족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애니의 집안은 단순히 불행한 가족이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저주를 짊어진 존재들이었음이 밝혀집니다.

특히, 찰리의 죽음 이후 펼쳐지는 일들은 마치 정해진 수순처럼 느껴집니다. 찰리는 처음부터 악마 ‘파이몬’의 그릇이 될 운명이었고, 결국 그 자리는 형 피터(알렉스 울프)에게 이어집니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여러 상징들—사탄적 의식, 기괴한 조각상,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특정 단어들—은 영화가 단순한 공포 장르를 넘어,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영역까지 탐구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소름 끼치는 점은, 주인공들이 자신들의 운명을 이해하는 순간에도 그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피터가 점점 무너져 가는 과정은 마치 체스를 두듯 계획된 운명의 한 수처럼 보입니다.

 

3. 토니 콜렛의 연기와 압도적인 연출

 

유전은 단순한 공포 영화가 아니라, 배우들의 감정 연기가 극대화된 심리극입니다. 특히, 주인공 애니를 연기한 토니 콜렛은 영화 역사상 손꼽히는 강렬한 퍼포먼스를 보여줍니다.

그녀가 딸 찰리의 죽음을 알게 되고 절망에 빠지는 장면은 보는 이조차 숨이 막힐 정도로 현실적입니다. 그녀의 표정 하나하나가 슬픔, 분노, 절망, 광기를 넘나들며, 관객들마저도 그녀의 고통을 함께 느끼게 만듭니다.

연출 또한 압도적입니다. 아리 애스터 감독은 단순한 점프 스케어(깜짝 놀라게 하는 장면) 대신, 서서히 쌓아 올리는 긴장감으로 영화를 이끌어 갑니다. 영화의 색감과 조명은 불길한 분위기를 강조하며, 카메라는 마치 인형의 집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인물들을 바라봅니다. 이는 곧 주인공들이 거대한 힘에 의해 조종당하는 존재임을 암시하는 연출 기법입니다.

또한, 사운드 디자인도 이 영화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영화 내내 울려 퍼지는 묘한 소리, 찰리의 독특한 혀 차는 소리(“클릭”)는 단순한 음향 효과가 아니라,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불길한 상징으로 작용합니다.
유전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공포 영화의 공식을 따르지 않습니다. 악령이 튀어나오거나, 갑작스러운 소름 끼치는 장면이 아니라, 서서히 조여 오는 불안감과 압박감을 통해 진정한 공포를 전달합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후에도 그 여운은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결국 한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부모로부터 받은 것을 피할 수 있는가? 아니면, 모든 것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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